전쟁 4년, 달라진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생각
지난 2월 14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안전보장회의 현장.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우크라이나 군대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합니다. 이렇게 강한 군대를 북대서양조약기구 밖에 두는 것은 현명하지 않습니다.”
회의장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불과 전만 해도 그는 베를린에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젤렌스키는 “처음 목표는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이었지만, 미국과 유럽 일부 나라들이 지지하지 않았다”며 사실상 가입 포기를 암시했었습니다.
대통령의 강한 의지, 하지만 국민들은?
젤렌스키는 회의장 앞에 앉은 유럽 지도자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여부는 최소한 여러분이 결정해야 합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결정하도록 내버려두면 됩니다.”
러시아는 전쟁을 끝내는 조건 하나로 ‘우크라이나가 영원히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젤렌스키는 이런 러시아의 요구에 휘둘리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흘 수도 키이우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열아홉 대학생 안드리아나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북대서양조약기구가 우리를 보호해줄 거라는 믿음이 없어요.”
환상에서 깨어난 사람들
서른일곱 므하일로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일찍 가입했다면 전쟁을 막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마흔네 드므드로 역시 “이제 와서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고려하면 됩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4년 전쟁이 시작됐을 때만 해도 상황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당시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한결같은 바람이었습니다. 러시아가 다시 침략하는 것을 막을 있는 안전장치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2019년에 개정된 헌법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추진’이 명시될 정도였습니다. 1994년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미국, 러시아, 영국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는 ‘부다페스트 각서’에 서명했습니다. 하지만 약속은 러시아의 침공을 막지 못했고, 우크라이나는 종이에 적힌 문서보다 확실한 안전 보장을 원하게 됐습니다.
러시아가 전쟁을 시작한 이유
아이러니하게도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시도는 러시아가 이번 전쟁을 일으킨 명분이기도 합니다. 러시아는 1989년 독일이 통일될 서방 국가들로부터 “북대서양조약기구를 동쪽으로 확장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러시아는 자국 국경 방향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가 확장되는 것을 심각한 위협으로 여깁니다. 특히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절대 넘어서는 되는 마지막 방어선이었습니다.
트럼프의 등장과 변화된 분위기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에 의구심을 갖게 것은 러시아의 위협 때문이 아닙니다. 결정적 계기는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미국 대통령이 것입니다.
트럼프는 ‘유럽이 안보에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북대서양조약기구에서 발을 빼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남성은 말했습니다.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상황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는 예전의 북대서양조약기구가 아닙니다.”
키이우경제대학원의 이반 호므자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가 분열된 조직으로 인식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이 정말 좋은 선택인지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있습니다.”
헝가리라는 걸림돌
특히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 헝가리 같은 나라의 존재는 오히려 마이너스 요소입니다. 헝가리는 우크라이나에 우호적이지 않아서, 우크라이나를 돕는 중요한 결정 과정에서 계속 방해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유럽연합 회원국이기도 헝가리는 2월 23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153조 규모의 긴급 대출 지원안에도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새로운 대안을 찾아서
호므자 교수는 덧붙였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목표는 확실한 안전 보장입니다. 단순히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만약 북대서양조약기구가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의지가 있는 나라들과 양자 혹은 여러 나라가 함께하는 동맹을 맺는 것이 나은 대안이 있습니다.”
전쟁 발발 4주년을 맞은 2월 24일, 젤렌스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 참석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이미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키이우 도심에는 러시아군에게서 빼앗은 자주포와 전차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이 영토를 되찾은 획득한 일종의 전리품입니다. 4년간의 전쟁을 겪으며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스스로를 지킬 힘을 키웠고, 이제는 누구의 보호에만 의존하기보다 실질적인 안전 보장을 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