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장 전격 사직 의사 밝혀
박영재 법원행정처장이 2026년 2월 27일 오전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처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처장은 지난달 13일 천대엽 전임 처장의 뒤를 이어 임명된 불과 45일 만에 이런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는 역대 법원행정처장 가운데 가장 짧은 재직 기간이 것으로 보입니다.
사퇴 배경에는 국회와의 갈등
박 처장은 입장문을 통해 “최근 여러 상황과 법원 안팎의 의견을 살펴볼 때, 제가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국민과 사법부를 위해 나은 선택”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어려운 시기에 그만두게 되어 죄송하다”며 “사법 제도를 바꾸는 논의가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길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그의 사퇴 결정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한 사법개혁 관련 법안 가지의 강제 통과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국회는 지난 26일 민주당 주도로 법 왜곡죄를 담은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법안은 판사나 검사가 특정인에게 불이익을 주려는 목적으로 법을 잘못 적용하거나 증거를 조작할 경우 10년 이하 징역에 처할 있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사법부의 강한 반발
같은 통과된 재판소원제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으로, 대법원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안입니다. 대법원은 이를 사실상 ‘4심제’라며 강하게 반대해 왔습니다. 또한 28일 처리될 것으로 예상되는 대법관 인원 확대 법안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사실 심리가 약해질 있다”며 단계적으로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전국 법원장들은 25일 긴급 임시 회의를 열고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사법 제도의 근본을 바꾸고 국민 생활에 영향을 있는 법안들이 사법부와 사회 여러 분야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공개 논의와 부작용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국회 본회의에 올려진 것에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법원장들은 “여러 기관과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협의체를 통해 폭넓고 깊이 있는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여당의 지속적인 압박
박 처장은 취임 직후부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지난해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상고심에서 전원합의체 회부 전에 주심 역할을 맡았다는 점이 문제가 됐습니다. 여당은 조희대 대법원장이 그를 ‘사법부의 대외 소통 창구이자 행정 책임자’로 임명한 배경도 지적하며 사과 요구와 사퇴 압박을 계속했습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사표를 사람은 조희대 대법원장이다. 사법 불신의 근원인 대법원장은 즉각 사퇴하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과거 사례와 비교
법원행정처장이 중도에 사퇴한 전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2009년 김용담 처장은 “재판 업무로 돌아가겠다”는 이유로 사퇴했습니다. 당시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 시위 재판 개입 논란에 대한 책임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2019년 안철상 처장은 오랜 업무 부담을 이유로 사직 의사를 밝혔고, 일각에서는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과의 갈등 때문이라는 관측이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사퇴 배경이 모두 법원 내부 사정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처장의 경우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처장은 사퇴 이유로 “사법 제도 개편”을 직접 언급했고, 사법개혁 법안을 둘러싼 제도 충돌이 현재 진행 중인 만큼 파장은 수밖에 없습니다.
책임과 부담 완화 조치로 해석
이번 사퇴를 책임을 지는 표명과 부담을 덜어내는 조치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법원행정처가 국회와의 개혁 논의에 적극적이었어야 한다는 내부 비판에 답하는 동시에, 여권의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요구를 막으려는 메시지가 아니냐는 해석입니다.
박영재 처장은 1996년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로 시작해 법원행정처 심의관,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등을 거쳤습니다. 법원행정처 기획총괄심의관과 기획조정실장, 차장을 지낸 2024년 8월 대법관에 임명됐습니다. 사법 행정과 재판 실무에 모두 능하고 소통에 적극적인 인물로 평가받아 왔습니다.
국회와 사법부의 정면 충돌은 이제 공개적인 대립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처장의 조기 사퇴가 갈등을 완화할지, 아니면 파장을 불러올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