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전쟁은 늘 새로운 무기를 탄생시켰다. 제1차 세계대전의 전차, 제2차 세계대전의 항공모함과 레이더, 걸프전의 정밀유도무기가 그랬다. 그리고 21세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에서도 또 하나의 전환점이 만들어졌다. 바로 ‘드론 전쟁’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드론은 항공 촬영이나 농업, 취미 활동에 주로 쓰이는 장비였다. 군에서도 정찰이나 감시 임무를 보조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현재 우크라이나 전장에서는 수백 달러짜리 소형 드론이 수천만 달러짜리 전차와 방공 시스템을 파괴하는 핵심 무기 역할을 하고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우크라이나가 이 기술을 단순히 전쟁에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우크라이나는 ‘무기를 수입하는 나라’가 아닌, ‘전투 경험을 수출하는 나라’가 됐다. 우크라이나가 불과 4년 만에 ‘드론 강국’으로 급부상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우크라이나가 주도하는 ‘드론 외교’와 ‘드론 생태계’는 과연 세계 안보 지형을 어떻게 바꾸게 될까.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지난 5월 하르키우 전선에서 러시아 진지를 향해 드론을 날리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러시아군 전차 한 대가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을 따라 천천히 이동한다. 두꺼운 장갑차 위에는 철제 구조물이 거미줄처럼 얹혀 있다. 근래 들어 러시아군이 소형 자폭 드론 공격을 막기 위해 급조한 어설픈 방호막이다. 병사들 역시 언제부턴가 전방을 주시하기보다는 하늘을 더 자주 올려다본다. 어디선가 소형 드론 한 대가 날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뒤 숲 가장자리에서 작은 비행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1인칭 시점 드론인 FPV이었다. 드론은 전차 주변을 한 바퀴 선회하는가 싶더니 전차의 가장 약한 상부를 찾아낸 후 그대로 돌진했다. 곧 폭발음이 들렸고, 순식간에 전차 위로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수십만 원 수준의 소형 드론 한 대가 수십 혹은 수백억 원에 이르는 전차를 단 몇 초 만에 무력화시킨 것이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당시만 해도 양국의 전력 차이는 압도적이었다. 러시아는 전차, 전투기, 미사일, 포병 등 대부분의 재래식 전력에서 우위를 점했고, 많은 군사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가 오래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곧 전쟁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병력과 장비가 부족했던 우크라이나가 저렴하면서도 빠르게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드론으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시중에서 판매되는 상업용 드론을 개조해 정찰을 하거나, 포병에게 좌표를 전달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곧 폭발물을 장착한 자폭 드론과 FPV 드론이 등장하면서 전쟁의 양상은 급격히 달라졌다. FPV 드론은 조종사가 고글을 통해 드론의 시야를 실시간으로 보며 조종하는 것이 특징이다. 마치 게임을 하듯 목표물을 향해 돌진할 수 있기 때문에 움직이는 전차나 장갑차, 참호 속 병사도 정밀하게 타격할 수 있으며, 이런 까닭에 가성비 최고의 무기라는 평가를 받는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우크라이나의 드론 개발 및 생산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이 같은 변화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로이터’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드론 산업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면서 생산 규제를 대폭 완화했고, 이에 따라 수백 개의 민간 기업과 스타트업이 앞다퉈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고 전했다. 과거에는 군수기업만 생산하던 무기를 이제는 소규모 기술기업과 대학 연구팀, 자원봉사자들까지 함께 나서서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생산량 역시 전쟁 초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늘어났다. 6월 18일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을 받은 모스크바의 중요 연료시설에서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다만 우크라이나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드론을 대량 생산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큰 무기는 사실 다른 데 있다. 바로 현장에서 전해오는 피드백, 즉 ‘실전 경험’이다. 새로운 드론이 투입되면 곧바로 전투 결과가 분석되고, 문제점은 며칠 만에 설계에 반영된다. 전장에서 터득한 경험이 공장으로, 공장에서 개선된 기술이 다시 전장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게다가 설계에서 생산, 실전 투입, 성능 분석, 개량까지 이어지는 주기는 몇 달이 아닌 몇 주, 때로는 며칠 단위로 돌아간다. 이에 미국의 한 안보 전문가는 “우크라이나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드론 연구소이자 시험장이 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를 ‘피로 얻은 경험’ 즉, ‘혈전’이라는 표현으로 소개했다. 한 우크라이나 드론 개발자는 “우리는 매일 새로운 문제를 만나고, 다음 날에는 그 해결책을 만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이 기술 혁신의 속도를 끌어올린 것이다. 드론을 이용한 새로운 전술이 속속 개발되면서 전쟁의 양상이 확연히 바뀌고 있다는 점도 주목받고 있다. 러시아는 전쟁이 장기화되자 값비싼 순항미사일 대신 저렴한 이란산 자폭 드론인 ‘샤헤드’를 대량 투입해 수십~수백 대씩 한꺼번에 공격하는 ‘벌떼 공격’을 감행했다. 속도는 전투기보다 훨씬 느리지만 수십kg의 폭약을 싣고 발전소와 변전시설, 군수시설을 향해 벌떼처럼 날아오는 드론들은 우크라이나 방공망에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겼다. 실제 ‘샤헤드’ 한 대를 격추하기 위해 수억 원짜리 방공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방법이 아니었다. 이에 군사 전문가들은 “저가 드론으로 상대의 비싼 방공망을 소모시키는 것이 러시아의 비대칭 전술 가운데 하나”라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전선에서 우크라이나 드론 조종사가 장거리 요격 드론 P1-Sun을 조작하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우크라이나는 여기서 예상 밖의 해답을 찾아냈다. 미사일 대신 드론으로 드론을 격추하는 방식, 즉 소형 요격 드론을 활용해 공중에서 ‘샤헤드’를 직접 추적해 충돌시키는 새로운 전술이었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무기가 등장한 것을 넘어 방공 개념 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사정이 이러니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드론은 더 이상 아껴 사용해야 하는 귀한 장비가 아니다. 필요하면 언제든 투입할 수 있고, 임무를 마치지 못하면 버리는 소모품에 가깝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FPV 드론이다. 이와 관련, 우크라이나군 관계자들은 “현재 전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무기는 FPV 드론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FPV 드론이 만능은 아니다. 전파 교란에 취약하다는 점, 조종사의 숙련도에 따라 성공률이 크게 달라진다는 점은 단점으로 꼽힌다. 실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드론에 대응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강력한 전자전 장비를 전선 곳곳에 배치해 드론 통신을 교란했고, 위성항법장치(GPS)를 방해하는 기술도 지속적으로 발전시켰다. 여기에 광섬유 케이블을 연결해 전파 교란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드론까지 실전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우크라이나는 또 다른 해법을 찾기 시작했다. 바로 인공지능(AI)이 조종하는 드론이다. 이와 관련, ‘워싱턴포스트’는 우크라이나 기업들이 전파 교란 환경에서도 목표물을 끝까지 추적할 수 있는 AI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존 드론은 조종 신호가 끊기면 임무 수행이 어려웠지만, AI를 탑재한 드론은 마지막으로 확인한 목표물의 위치와 형태를 바탕으로 스스로 비행을 이어갈 수 있도록 발전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이미 ‘전자전 대 AI’ 경쟁에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컨대 한쪽이 전파를 방해하면 다른 쪽은 자율비행 능력을 개선하고, 이에 맞서 다시 새로운 교란 기술이 등장하는 식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경쟁이 앞으로 군사용 무인 시스템 발전을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흑해에서 무인수상정으로 전쟁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우크라이나의 해상 드론 마구라 V5. 사진=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의 드론 혁신은 하늘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세계 군사 전문가들을 가장 놀라게 한 건 바다였다. 러시아가 절대적 우위를 점할 것으로 예상됐던 흑해에서 우크라이나는 무인수상정(USV)으로 전쟁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사실 전쟁 초기만 해도 우크라이나 해군은 러시아와 정면 승부를 벌일 만한 전력이 아니었다. 대형 군함 숫자도, 화력도 러시아에 크게 뒤졌다. 이를 잘 알고 있었던 우크라이나가 선택한 건 거대한 군함 대신 폭약을 실은 소형 무인수상정이었다. 길이 수m에 불과한 이 무인정은 낮은 선체 덕분에 레이더 탐지가 쉽지 않고, 위성통신과 카메라를 이용해 수백km 떨어진 곳에서도 조종할 수 있다. 공격은 최고 속도로 목표를 향해 돌진한 뒤 충돌과 동시에 폭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실제 러시아 흑해함대는 반복적인 드론 공격 이후 주요 함정의 배치와 작전 방식을 바꾸는 등 대응 전략을 수정해야 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를 가리켜 ‘비용 대비 효과가 가장 큰 혁신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제 미국과 유럽이 우크라이나를 단순한 지원 대상이 아니라 배워야 할 파트너로 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소형 드론의 대량 생산과 신속한 전력화를 추진하는 ‘드론 도미넌스’ 구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을 적극 반영하고 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와 발트 3국은 물론 영국, 독일, 프랑스도 드론 전력을 확대하고 있다. NATO 회원국들 사이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미래 전쟁에서는 무인체계가 핵심 전력이 될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에 미국과 유럽 각국은 우크라이나 기업들과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공동 생산과 기술 협력, 시험평가 등 다양한 형태의 논의가 이어지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역시 전쟁에서 축적한 경험을 하나의 산업 경쟁력으로 발전시킬 구상을 하고 있다. 이를 가리켜 ‘로이터’는 ‘우크라이나의 드론 외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드론 산업은 우크라이나 경제를 떠받치는 핵심 분야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수백 개 기업이 관련 산업에 뛰어들었고, AI와 자율비행, 전자전 대응 기술까지 축적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 전쟁이 남긴 또 하나의 변화는 무기 개발의 민주화다. 과거 첨단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본과 국가적 차원의 군수산업 기반이 필요했다. 그러나 구조가 비교적 단순한 드론은 민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부품으로 설계가 가능한 데다, 소프트웨어를 개량하면 군사용으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정부가 방향을 제시하고 민간 기업이 기술을 개발하며, 군은 실전 경험을 제공하는 구조가 빠르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수년간 드론 전쟁을 수행한 우크라이나가 동맹국들에게 ‘피로 얻은 경험’을 팔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워싱턴포스트 캡처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장에서 비용 대비 효과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다시 말해 ‘비싼 무기가 정말 가장 효율적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그렇다고 전차나 전투기, 군함의 시대가 끝났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규모 작전과 장거리 타격, 제해권과 제공권 확보에는 여전히 기존 전력이 핵심이다. 그러나 이제는 고가의 전략무기와 함께 수많은 저가 무인 시스템을 동시에 운용하는 방식이 새로운 전장의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드론 기술의 확산이 새로운 안보 문제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제작비용이 낮아질수록 국가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드론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앞으로의 과제는 더 뛰어난 드론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탐지하고 무력화하는 방어 기술을 함께 발전시키는 데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개발될 차세대 전차와 군함, 전투기는 모두 ‘드론과 함께 싸우는 방법’을 전제로 설계될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적군의 드론을 탐지하고 무력화하는 방어 기술 개발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실제 전문가들은 전쟁은 끝나도 드론 혁명은 끝나지 않을 것으로 점치고 있다. 실제 우크라이나 정부는 전후 국가 재건 과정에서도 드론 산업을 핵심 성장동력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단순히 군사용 드론을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농업, 물류, 재난 구조, 시설 점검 등 민간 산업으로 기술을 확산시키겠다는 구상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