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 끊긴 키이우, 러시아 공격에 맞서는 사람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4년째 접어든 가운데, 키이우 시민들은 끊임없는 공습과 전력 차단 속에서도 일상을 지켜내고 있다. 300만 명이 살아가는 도시에서 전기는 이제 사치품이 되었고, 추위와 어둠은 일상이 되었다.
새벽의 폭발음
전쟁 4주년을 이틀 앞둔 새벽 4시 36분, 호텔 창문 밖에서 미세한 폭발음이 들렸다. 하늘에서는 발사체가 날아가는 소리가 울렸고, 이어서 강력한 폭발이 여러 차례 이어졌다. 40분 휴대폰으로 공습 경보가 왔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키이우에 경보는 여러 울렸지만 실제 위험을 느낀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새벽은 달랐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8층 객실에서 완전히 어두운 계단을 통해 지하 대피소로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긴장 속에서 아침을 맞았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날 새벽 미사일과 드론 공격으로 키이우에서 1명이 목숨을 잃었고 여러 명이 구조되었다.
전력 차단이 일상이 도시
지난해 10월부터 러시아는 새벽 시간대에 발전소와 전력망을 집중 공격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전기가 끊기는 것이 키이우의 일상이 되었다. 올해는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극심한 추위까지 겹쳐 전쟁 이후 가장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37세 므하일로는 “이런 추위는 내가 어렸을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키이우는 소련 시대에 지어진 고층 아파트가 대부분이다. 부유한 동네에서는 주민들이 돈을 모아 발전기를 사서 엘리베이터를 돌리지만, 일반 서민들은 그럴 형편이 된다. 발전기 구입 비용도 문제지만 전기 요금이 20%나 비싸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민 아파트 지역은 오전 7시에도 불이 켜진 곳이 거의 없었다.
전기 공급 시간에 맞춘 생활
대신 주민들은 전력이 공급되는 시간에 맞춰 하루를 계획한다. 전기가 들어오면 밀린 빨래를 하고, 음식을 만들고, 물병에 물을 채우고, 보조 배터리를 충전한다. 정전과 전력 공급 일정을 알려주는 앱은 처음에는 단위로 운영되다가 지금은 단위로 세분화되었다. 하루에 1~2시간만 전기가 공급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정확한 정보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16층짜리 소련식 아파트 2층에 사는 39세 안나는 정전에 대비해 생수를 사두고 대야에 화장실용 물을 받아두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난방이 끊기면서 수도관이 얼어 터져 공급도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요리를 위해 휴대용 가스버너를 샀고, 최대 4시간 동안 불을 밝힐 있는 휴대용 조명도 구입했다. 휴대폰 보조 배터리는 7개로 늘어났다.
그녀는 “가장 걱정되는 냉장고 음식이 상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높은 층까지 걸어 올라가야 하는 고층 주민들에 비하면 나는 괜찮은 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여름에는 건너편 아파트가 러시아 드론 공격을 받아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수업도 멈춘 학생들
전력 차단은 학생들의 수업도 막았다. 키이우외국어대 기숙사에서 만난 20세 스피리나 마르하리타는 “정상적으로 수업을 언제였는지 기억도 난다”고 말했다. 대학은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했지만 전기가 끊기면 인터넷도 불통이 되어 수업이 불가능하다.
기온이 영하 12도까지 떨어진 날, 오후 6시 30분부터 전력 공급이 끊길 예정이었다. 저녁에 전기가 들어오면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에 19세 카리나 크세닉은 “맥도날드에 가서 밤을 보낸다”며 “이틀 동안 전기가 완전히 끊긴 적도 있다”고 답했다.
학생들은 기숙사 지하에 있는 대피소로 안내했다. 크세닉은 “일주일에 6번 공습 경보가 울린 적도 있다”며 “지금은 밝지만 경보가 울리면 완전히 어두워지고 가끔 여기서 잠을 잔다”고 말했다.
정상 수업을 유지하는 학교도 있다
물론 정상적으로 수업하는 학교도 있다. 키이우경제대학원 이반 호므자 교수는 “공립 대학인 키이우-모힐라 아카데미는 전기와 난방이 끊기면서 대면 수업을 중단했다”며 “하지만 사립인 키이우경제대학원은 총장이 기부금을 모아 발전기를 돌려 정상 수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러시아의 반복된 공격으로 난방 파이프가 심하게 손상되어 복구가 불가능한 곳이 많다는 것이다. 기술자들이 밤을 새워 복구해도 러시아가 다시 공격하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
얼려 죽이려는 집단 학살
호므자 교수는 전력망 공격을 1932년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집단 학살인 홀로도모르에 비유했다. 당시 스탈린 정권은 토지를 빼앗고 대량의 곡물을 강제로 가져가면서 300만~700만 명의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굶겨 죽였다. 호므자 교수는 “당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굶겨 죽인 것처럼, 지금은 얼려 죽여서 집단 학살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버티는 사람들
하지만 만난 우크라이나 주민들은 혹독한 겨울을 보내면서도 영토를 포기하거나 항복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쟁이 앞으로 5년 이어져도 버틸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포기하면 고통스러운 지옥이 기다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우크라이나 사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