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강원도 홍천의 산기슭에서 발견된 유골 하나. 유골의 주인은 놀랍게도 75년 전쟁터에서 사라진 열아홉 청년이었습니다.
1951년 1월, 겨우 스무 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군복을 입은 유제용. 그는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자란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당시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기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형을 따라 군에 입대했습니다.
입대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습니다. 제대로 훈련을 받을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신병 교육도 거의 받지 못한 바로 국군 제8사단 10연대에 배치되었고, 달도 되지 않아 최전방 전투에 투입되었습니다.
1951년 2월 27일, 횡성 전투. 중국군과 북한군의 맹렬한 공격이 이어지던 그날, 유제용은 금물산 일대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그가 속한 부대의 지휘관 대부분이 전사하거나 실종될 정도로 치열한 전투였습니다.
더욱 가슴 아픈 사실은 그의 친형 유제경도 같은 부대에서 싸우다가 전인 1950년 12월 먼저 전사했다는 점입니다. 형의 유해는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가족에서 형제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75년이 지나도록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것입니다.
2024년 4월, 국방부 유해발굴단이 홍천 남면 금물산에서 유골을 발굴했습니다. 정밀한 감식과 DNA 대조 작업을 거쳐 최근 유골의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바로 유제용 일병이었습니다.
올해 2월 27일, 서울 노원구의 주택. 국방부 담당자가 찾아와 유제용의 막내동생 유제만 씨에게 ‘호국의 얼’ 함을 전달했습니다. 안에는 형의 신원 확인 통지서와 전쟁터에서 함께 발견된 유품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형님이 전사하셨을 저는 겨우 살이었습니다. 형의 얼굴도, 목소리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올해 일흔일곱 살이 유제만 씨는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부모님도 돌아가신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너무 아픈 기억이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면 뼈도 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유제만 씨는 형을 다시 만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라가 끝까지 잊지 않고 찾아준 덕분에 기적처럼 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유제만 씨는 앞으로 형의 유해를 가까운 국립묘지에 모시고 자주 찾아뵙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습니다. 75년 만에 돌아온 형을 이제는 제대로 모시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2000년부터 시작된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 유제용 일병은 올해 신원이 확인된 번째 호국 영웅이며, 지금까지 270명의 전사자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아직도 수많은 영웅들이 산과 들에 남겨진 가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제용 일병의 유해는 육군 제11기동사단 발굴팀이 처음 발견했고, 국방부 전문 발굴팀이 세심하게 수습했습니다. 세월 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열아홉 청년이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바친 젊은 영웅들. 그들의 희생을 결코 잊어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