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밀라노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뜻밖의 사연이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선수단 앞에서 국가명이 적힌 팻말을 들고 입장을 이끌었던 사람이 러시아 출신 자원봉사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입니다.
주인공은 아나스타샤 쿠체로바라는 이름의 건축가입니다. 러시아 국적을 가진 그녀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14년째 살아가고 있는 자원봉사자였습니다.
당시 우크라이나 선수 다섯 명이 경기장으로 들어서자, 관람객들은 뜨거운 박수와 함성으로 이들을 맞이했습니다. 러시아의 공격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응원과 지지의 마음이었습니다. 선수들은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들며 답했고, 은색 패딩에 검은 선글라스를 쿠체로바는 미소를 지으며 선수단을 안내했습니다.
그녀의 정체는 행사가 끝난 본인이 직접 사회관계망 서비스에 심정을 밝히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보통 대회 주최 측은 팻말을 드는 자원봉사자에게 무작위로 나라를 배정하지만, 이번에는 연출 담당자가 자원봉사자들에게 의견을 물었고, 쿠체로바는 스스로 우크라이나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모든 러시아 사람이 전쟁을 찬성하는 아니라는 보여주는 작은 행동이라도 하고 싶었어요“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관중석에서 선수단을 향한 환호가 터져 나왔을 때, 자신도 모르게 선글라스 뒤로 눈물이 흘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우크라이나 선수들도 그녀가 러시아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날 기수로 나선 쇼트트랙 선수 엘리자베타 시토르코와 피겨 선수 키릴로 마르사크는 사람 모두 아버지가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쿠체로바는 “우크라이나 선수들은 제가 국적을 말하지 않았지만 눈치채고 러시아어로 대화를 걸어왔어요. 이건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 사이에 어떤 깊은 연결고리가 남아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2018년 이후로 러시아를 번도 방문하지 못했다는 그녀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 사랑하고 결혼하며 운동하고 올림픽에 나가고 있습니다. 모든 일들이 끔찍한 전쟁을 배경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가슴 아픕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또한 “저의 이번 선택은 독살당한 러시아 반대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의 사망 2주기와 겹쳐있습니다. 다만 러시아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지인들에게 피해를 줄까 걱정됩니다”라고 조심스럽게 밝혔습니다.
재미있는 우연도 있었습니다. 쿠체로바는 공교롭게도 덴마크 선수단의 팻말도 함께 들었는데, 덴마크 선수단 역시 자치 지역인 그린란드를 차지하겠다는 미국의 위협에 맞서는 모습을 보여 관중들로부터 박수를 받았습니다. 쿠체로바는 “완전히 우연의 일치였어요. 그린란드와 미국 사이의 문제도 깊이 생각해보게 됐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사람의 작은 용기가 전쟁과 갈등 속에서도 남아있는 인간적인 연결과 평화에 대한 바람을 보여준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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