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세 할아버지의 22년 약속
올해 95세가 김명배 할아버지는 지난 25일, 일본 도야마현에 있는 후지코시라는 회사 본사를 다시 찾았습니다. 이번이 벌써 10번째 방문입니다.
김 할아버지가 길을 매년 찾는 이유는 하나, 22년 세상을 떠난 아내 임영숙 할머니의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서입니다.
12살 소녀가 겪어야 했던 비극
1945년 3월,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임영숙 할머니는 겨우 12살이었습니다. 일본인 담임선생님은 할머니에게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근로정신대에 가면 좋은 대우를 받을 있다”
거짓말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고 일본 도야마의 후지코시 군수공장으로 끌려간 할머니를 기다린 혹독한 현실이었습니다.
삼엄한 감시 속에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고, 임금을 달라는 말조차 꺼낼 없었습니다. 1945년 10월, 일본이 전쟁에서 패한 뒤에야 겨우 고향으로 돌아올 있었습니다.
70년간 숨겨야 했던 아픔
고향에 돌아온 할머니는 7년 김명배 할아버지를 만나 가정을 꾸렸습니다. 하지만 남편에게조차 자신이 근로정신대로 일본에 끌려갔던 사실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깊은 상처였습니다.
70세가 되던 2003년, 할머니는 용기를 냈습니다.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일본 도야마 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후지코시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이듬해인 2004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끝나지 않은 싸움
그때부터 할아버지는 아내를 대신해 후지코시와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2013년부터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고 매년 주주총회가 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후지코시를 찾았습니다.
2013년에는 다른 유족들과 함께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2024년 대법원은 마침내 후지코시에게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후지코시의 구로사와 쓰토무 사장은 이렇게 답할 뿐입니다.
“강제노동을 시키거나 임금을 주지 않은 적이 없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끝난 문제다”
한 주주가 “2년 창업 100주년을 맞으니, 역사를 제대로 정리하고 사과해서 피해자들의 마음을 풀어달라”고 부탁했지만, 구로사와 사장은 “현재 회사와 관련 없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겠다”며 말을 끊어버렸습니다.
협오와 위협 속에서도
주주총회 전날, 일본 시민단체 ‘호쿠리쿠연락회’는 할아버지와 함께 후지코시 본사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었습니다. 일본 전역에서 모인 20여 명의 시민단체 회원들이 함께했습니다.
그러나 우익 단체들이 여러 대의 대형 승합차와 스피커를 동원해 집회를 방해했습니다.
김 할아버지가 마이크를 잡자 “조센진은 한국으로 돌아가라”며 발언을 막았고, 집회 장소 앞까지 차로 돌진하는 위협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한국이 이미 돈을 가져갔다”, “불만이 있으면 한국 정부에 말하라”고 조롱하며 1시간 넘게 소동을 벌였습니다.
그럼에도 나카가와 미유키 호쿠리쿠연락회 사무국장은 “일본의 강제동원과 인종 차별, 협오 발언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며 “후지코시는 역사를 똑바로 보고 사과하라”고 외쳤습니다.
100세를 앞둔 할아버지의 절규
김 할아버지는 말합니다.
“당신들이 아무리 도망가려 해도 후지코시를 전범기업으로 단죄한 판결은 변하지 않는다”
“아내가 대법원 판결을 듣지 못한 너무 억울하다”
“후지코시는 2003년부터 21년간 법정에서 다투고도 판결을 따르지 않느냐”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후지코시가 법적, 역사적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며 “배상을 이행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할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100세를 앞둔 김명배 할아버지의 싸움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22년 세상을 떠난 아내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그리고 역사의 진실이 묻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