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살인 의도 있었다고 판단
징역형에 집행유예 선고… 개정 지연과 여성의 임신 부담 문제도 언급
변호인 측은 “검찰의 과도한 기소”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서울 법원에서 임신 36주에 수술로 태아를 사망하게 혐의로 재판을 받던 산모에게 징역형과 함께 집행유예가 내려졌다. 재판부는 “국가가 임신과 출산, 육아를 가로막는 경제적·사회적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출산 준비 흔적 전혀 없어” 살인 의도 인정
서울중앙지법은 4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산모 권모씨와 병원장 윤모씨, 집도의 심모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윤씨에게는 징역 6년과 벌금 150만 원, 추징금 11억5천여만 원이 선고됐고, 심씨에게는 징역 4년이 내려졌다. 권씨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권씨는 의사들과 차례로, 암묵적으로 함께 모의하여 피해자인 태아를 사망하게 했다”며 “권씨에게 간접적으로나마 살인 의도가 있었다고 있다”고 판단했다.
윤씨와 심씨는 2024년 6월 25일 임신 34~36주인 권씨의 태아를 제왕절개로 꺼낸 냉동고에 넣어 사망하게 혐의를 받는다. 권씨가 나중에 수술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면서 논란이 커지자 병원은 거짓 사산 증명서를 발급했다.
윤씨는 2022년 8월부터 2024년 7월까지 527명에게 임신중지 수술을 하고 14억6천만 원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임신 24주 이후의 임신중지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2019년 헌법재판소가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 새로운 법이 만들어지지 않아 임신중지 자체를 처벌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쟁점은 권씨에게 살인 의도가 있었는지였다. 권씨 측은 최종 진술에서 “지인에게 아기가 사산될 거라고 들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권씨가 △정상적인 태아 심장박동을 확인한 사체 처리 동의서에 서명했고 △수술 병원과 비용을 알아본 반면 △출산 지원 시설이나 입양 절차를 알아본 기록은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임신중지는 범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권씨 주장에 대해서는 “태아는 생존 가능한 시점에서 나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길어지는 법적 공백… “일방적으로 비난하기는 어려워”
재판부는 다만 병원장 등과는 달리 권씨에게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헌법 불합치 결정 이후 법무부는 2020년 ‘임신 14주까지만 허용하고, 15~24주 이내는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만 허용한다’는 내용으로 형법 개정안을 준비했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재판부는 “성별 차별적인 관습과 가부장적 문화 등으로 여성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사회적, 경제적 생활에서 많은 불이익을 겪고 있다”며 “헌재 결정과 법적 공백·혼란이 범죄 성립 여부를 바꾸지는 않지만 사건의 경우 고려할 여지는 있다”고 밝혔다. 이어 “권씨를 일방적으로 비난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권씨의 국선 변호인 김명선 변호사는 선고 직후 “임신중지를 임산부에게 살인죄를 적용한 사례는 이전에 없었다”며 “절박한 상황에 놓인 여성이 아이를 낳아 입양시키는 절차를 미리 알아봐야 의무가 있는 것처럼 판단한 것은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