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뉴욕에서 태어난 전설적인 음악가가 로스앤젤레스의 병원에서 8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유족들의 발표에 따르면, 닐 세다카는 ‘너는 나의 모든 것’, ‘오 캐럴’ 같은 명곡들을 남긴 세상을 떠났다.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 천재로 불렸던 그는 겨우 아홉 살의 나이에 뉴욕 줄리아드 음대에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클래식 음악을 배우면서도 대중가요에 대한 열정을 품고 있던 소년은, 열세 동네에 살던 열여섯 청년 하워드 그린필드를 만나면서 본격적인 작곡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사람의 만남은 대단한 결실을 맺었다. 1958년, 열아홉 살의 세다카가 가수 코니 프랜시스에게 제공한 ‘바보 같은 큐피드’라는 곡이 크게 성공하면서 음악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프랜시스는 이후에도 이들이 만든 ‘소년들은 어디에’라는 곡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같은 말, ‘일기장’이라는 제목의 싱글로 가수 데뷔를 세다카는 이듬해 동료 작곡가 캐럴 킹에게 바치는 마음을 담은 ‘오 캐럴’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스타 반열에 올랐다. 뒤로 ‘편도 티켓’, ‘천국으로 가는 계단’, ‘너는 나의 모든 것’, ‘이별은 정말 힘들어’ 같은 히트곡들을 연달아 내놓으며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다.
특히 다른 작곡가가 만든 ‘편도 티켓’은 1979년 영국의 디스코 그룹 이럽션이 다시 불러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 가수 방미가 ‘날 보러 와요’라는 제목으로 번안해 디스코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1960년에 나온 ‘너는 나의 모든 것’은 국내에서도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은 곡으로 기억된다.
1960년대 중반,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 같은 영국 밴드들이 미국 음악 시장을 장악하면서 음악계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이때 세다카는 무대 앞에 서기보다는 작곡에 더욱 집중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가 만든 곡들은 프랭크 시나트라, 엘비스 프레슬리, 존스, 몽키스 당대 최고의 가수들에게 전해져 다시 히트를 기록했다.
1973년에는 부부 듀엣 캡틴 테닐에게 ‘사랑이 우리를 함께 있게 거야’가 미국 빌보드 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이듬해에는 직접 작곡하고 노래한 ‘빗속의 웃음’까지 1위에 오르며 화려한 컴백에 성공했다. 이는 그에게 번째 전성기를 안겨준 순간이었다.
음악계에 남긴 그의 업적은 1978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이 새겨지고, 1983년에는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것으로 공식 인정받았다. AP통신은 그를 추모하며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 엘비스 이후 비틀스 이전의 시대를 대표하며 청소년들의 순수한 감성을 담아낸 곡들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그가 남긴 음악들은 단순한 멜로디를 넘어, 한 시대의 감성과 추억을 고스란히 담아낸 문화유산으로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살아 쉬고 있다.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그의 노래들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