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극작가이자 연출가로 활동하는 제스로 컴튼(37세)은 지난해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로 영국 최고 권위의 올리비에 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그는 한국 창작 뮤지컬 ‘더 라스트맨’의 작품 자문을 맡으며 서울을 방문했다.
영미권 공연계의 상업주의 비판
그는 영국과 미국 뮤지컬 시장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유명 배우를 내세워 높은 가격의 티켓을 파는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돈벌이에만 집중해 낮은 수준의 작품을 만드는 제작 태도는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특히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가 기존에 검증된 책이나 영화를 단순히 무대로 옮기는 데만 집중하고 있으며, 그마저도 창의성 없이 복제하는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한국 작품의 독창성에 주목
오는 5월 런던 사우스워크 플레이하우스에서 달간 공연되는 ‘더 라스트맨’은 공연제작사 네오가 2021년 첫선을 보인 작품이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서울 신림동 방공호에서 혼자 살아남은 생존자의 이야기를 다룬 1인 뮤지컬이다.
컴튼은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와 배경을 담으면서도 영미권 관객이 공감할 있는 보편적 주제를 다룬다”며 작품을 평가했다. 또한 1980년대식 공식에 얽매인 전형적인 미국 뮤지컬과 달리 다채로운 음악 스타일을 시도하고, 화려한 볼거리 뒤에 가려지기 쉬운 복잡한 심리를 탐구한다고 설명했다.
관객 문화의 차이를 반영한 각색
이번 런던 공연은 단순한 해외 진출이 아니라 현지 창작진과 협업하는 글로벌 제작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컴튼은 영국 관객의 감성에 맞춰 대본을 조정하고, 김달중 연출의 구상이 무대에서 제대로 표현되도록 돕는 역할을 맡았다.
그는 한국 관객과 영국 관객의 차이를 설명하며 “한국 관객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대사를 선호하지만, 영국 관객은 말하지 않는 부분에서 감정을 읽어낼 깊이 공감한다”고 말했다. 캐릭터가 눈물을 보이지 않을 오히려 관객이 운다는 것이다.
한국 콘텐츠의 역동성과 가능성
컴튼은 한국 창작물이 서구 무대로 나아가는 새로운 통로를 만들려는 시도에 깊이 공감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서구 작품이 한국으로 들어오는 일방적인 흐름이었다면, 이제는 반대 방향의 교류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더 라스트맨’처럼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처음부터 키워내고, 관객들이 이를 적극 지지해 성공으로 이끄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신림동 고시촌이라는 매우 한국적인 배경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일부에서는 해외 진출을 위해 서양 문학 기반의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컴튼은 오히려 한국 고유의 철학과 문화가 담긴 콘텐츠가 흥미롭다고 평가했다.
“영국 고전을 보고 싶다면 전통 있는 영국 극단의 작품을 찾을 것”이라며, 서구에 알려진 저작권 소재를 활용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생각은 이해하지만 자신에게는 한국만의 색깔이 담긴 이야기가 훨씬 매력적이라고 덧붙였다.
무대 공연의 미래
컴튼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의 위협 속에서도 무대 공연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집에서 편하고 저렴하게 즐길 있는 콘텐츠가 늘어나면서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내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만, “무대에는 넷플릭스로는 절대 대체할 없는 ‘라이브’만의 특성이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