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악역들의 매력
실생활에서는 피하고 싶은 존재들이지만, 무대 위에서는 작품의 깊이를 더하는 중요한 존재입니다. 공연 전문 기자가 매력적인 무대 대립 인물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살펴봅니다.
“춤춰봐, 자식아.”
꿈을 가져서는 되는 것일까요. 광산 마을의 소년은 단지 발레를 배우고 싶었을 뿐입니다. 형의 비웃음 섞인 말이 소년의 가슴에 깊이 박힙니다. 방으로 달려간 소년은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구르며, 온몸을 던집니다. 억눌렸던 화가 탭댄스의 리듬으로 터져 나옵니다.
이 뮤지컬의 ‘분노의 춤’ 장면은 11살 소년이 온몸으로 표현하는 절규입니다. 단순한 사춘기의 반항이 아닙니다. 개인이 거대한 사회 구조에 맞서며 외치는 저항이자,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폭력을 드러내는 몸부림입니다.
1980년대 영국 북부 광산 마을의 현실
당시 총리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수익성이 낮은 광산들이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생계가 어려운 집안에서 발레는 사치였고, ‘여자애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성차별적 인식이 깊게 박혀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춤을 좋아했던 소년이 마주한 적은 사람이 아닙니다. 국가와 제도, 역할과 노동자 계층에 대한 편견이라는 거대한 장벽입니다.
원작 영화와 무대를 모두 연출한 감독은 영화의 장면 전환 기법처럼 무대에서도 충돌을 장면에 겹쳐 놓습니다. 광산 폐쇄를 반대하는 시위대를 막는 경찰들의 방패, 그리고 방패가 만든 단단한 벽을 향해 몸을 던지는 소년. 소년은 분노로 춤을 추며 막힌 사회에 틈을 냅니다.
전형적인 악당은 아니지만, 작품에는 주인공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명확한 빌런이 존재합니다.
꿈을 숫자로 계산한 시대. 이름은 신자유주의입니다.
2005년 런던에서 초연된 뮤지컬은 2008년 브로드웨이로, 2010년에는 한국에 처음 들어왔습니다. 이후 차례 시즌을 거쳐 4월 12일 번째 무대가 열립니다.
권투 글러브 대신 발레 슈즈를 선택한 소년
아내를 잃은 광산의 노조원인 아버지는 치매를 앓는 어머니와 아들과 힘겹게 살아갑니다. 막내에게 해줄 있는 유일한 배려는 어려운 형편에도 ‘남자답게’ 키우기 위해 권투 수업비를 주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년은 권투 체육관에서 함께 진행되는 발레 수업에 매료됩니다. 글러브를 벗고 발레 슈즈를 신은 소년에게 돌아온 것은 응원이 아닌 거부였습니다.
근육은 광산과 권투 링에서나 증명하는 것이라 믿어온 아버지와 형에게, 막내의 발레는 이해할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생계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예술은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회라는 거대한 압박은 때로 가족의 걱정이라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아버지와 형이 소년을 말린 이유는 두려움에 가까웠습니다. 마을에 깊이 자리 잡은 ‘남자는 권투를 해야 한다’는 규범 속에서 소년의 춤은 쉽게 받아들일 없는 일이었습니다.
죽음을 축하받은 정치인
무엇보다 소년의 꿈을 가로막는 최종 빌런은 당시 정부입니다.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최초의 여성 총리는 유리천장을 깼지만,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대규모 민영화와 복지 축소 정책으로 소년에게는 꿈을 가로막은 장벽이었습니다.
“사회라는 것은 없다. 개별 남성과 여성, 그리고 가족이 있을 뿐이다”라는 선언과 함께 복지 축소와 무한 경쟁을 정당화했습니다. 각자도생과 사회 분열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뮤지컬에서 정부를 향한 적대감은 2막의 노래에서 정점에 이릅니다. 마을 주민들은 시대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노래로 드러냅니다. 2013년 사망 당시 한창 공연 중이었던 제작진은 노래를 그대로 유지할지 관객 투표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연대의 힘과 예술의 가치
뮤지컬 문법에서 주인공은 빌런을 통과하며 성장합니다. 작품의 다른 축은 정치적·산업적 변화를 견디게 하는 연대의 힘과 예술의 가치입니다.
주요 노래 ‘연대’로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합니다. 파업 중인 광부와 그들을 막아선 경찰, 그리고 발레 수업을 받는 아이들이 교차합니다. 서로 다른 편에 있었지만 지키려는 것은 가족과 생계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았습니다. 연대는 구호가 아니라, 같은 삶의 조건을 인정하는 순간에 시작됩니다.
‘꿈의 발레’ 장면에서 소년은 차이콥스키의 음악에 맞춰 미래의 자신과 함께 춤춥니다. 어린 소년과 성인이 소년이 무대에 장면에서 아버지는 처음으로 아들의 꿈을 현실로 봅니다.
그는 파업 대열을 이탈해 배신자라고 욕하던 사람들과 함께 광산으로 돌아갑니다. 그의 선택은 같은 노조원인 큰아들에게조차 비난받습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한 ‘빵’만큼이나 영혼의 위안을 위한 ‘장미’도 중요하기에, 사정을 동료들이 소년의 입학시험 경비 마련을 돕습니다.
비효율적이고 사치스러워 보였던 소년의 꿈이 역설적으로 무너져 가던 공동체를 다시 하나로 묶는 목표가 됩니다.
결국 파업은 실패하고 노동자들은 다시 지하 광산으로 내려가지만, 소년은 희망이 사라진 마을을 떠나 자신의 꿈을 향해 도약합니다. 패배한 공동체는 소년의 미래를 통해 자신들의 시간을 견딥니다.
인생을 바꾼 뮤지컬의 힘
이 뮤지컬은 번째 시즌을 맞으며 무대 현실에도 영향을 미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어린 주인공은 발레는 물론 탭댄스, 아크로바틱, 현대무용까지 소화해야 합니다. 주인공 역을 거치며 실제로 발레리노의 꿈을 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한국 초연의 번째 주인공은 발레단 수석무용수로 성장해 이번 무대에 성인 역으로 섭니다. 2017년 주인공 최종 후보였던 다른 배우 역시 아버지의 반대를 딛고 발레리노가 되었습니다. 그는 지난해 러시아 유명 발레단의 주역 무용수로 입단해 활동 중입니다.
무대 소년의 춤은 그렇게 현실의 경로를 바꾸기도 합니다.
이 작품의 기본 구조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소년의 이야기지만, 사회라는 빌런에 맞서는 정치극이기도 합니다. 2005년 초연작이 2026년에도 유효한 이유는 분열과 각자도생의 현실이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이 동시대성을 잃은 낡은 이야기로만 남는 날은 과연 있을까요.